본문 바로가기
REVIEW/Book

새의 선물 (은희경) 후기

by 나비로이 2020. 3. 14.

스포일러 있음

추천글

강추! 재밌는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진희의 시점에서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책.

그때 당시의 여성의 모습들을 바라볼 수 있고, 그 모습은 낯설지 않다.

지나치게 성숙하다고도 할 수 있는 진희의 솔직한 마음들을 들을 수 있는 재미가 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410072

 

 

여기서부터 스포 있음

1995년 제 1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

처음엔 어떤 책인지 모른채, 오만만씨에게 강추받아 읽기 시작하다가, '엇..? 옛날 얘기네, 근데 되게 사실적으로 잘 그려냈다'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알고보니 실제로 옛날에 쓰여진 소설책이었다,,ㅎㅎ

진희의 시점에서 쓰여진 소설책이다.

한 울타리 안에서 같이 지내는 여러 식구들에 관한 얘기가 나오는데, 그것을 서술하는 진희의 표현과 방식이 재미있어 빨려들어갈 것 같이 후다닥 읽게 된 소설책이었다.

사실 완독한지 조금 되어서 여운이 거의 다 사라졌지만..지금이라도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리뷰를 남기고자 한다.

책을 다 읽고서 나왔던 주인공들 하나하나 곱씹어보게 되었다.

작중 내가 제일 좋아하지 않은 인물은 광진테라 아저씨(박광진)과 장군이 엄마였다.

박광진은 뭐; 말할 것 없는 한남 그자체. 있는거라곤 허세밖에 없는 그런 사람이고.

장군이 엄마는 여기저기 스캔들이 터지면 신이 나서 이 얘기, 저 얘기를 하고 다니며, 남의 불행에 흥미를 보이고 재밌어하는 얄미운 캐릭터이다. 하지만, 되새겨보니 짜증났던 인물 중 하나인 장군이 엄마의 모습과 내 모습이 다를 바 없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다. 나도 책을 읽다가, 미쓰리(?)언니가 돈을 훔쳐 남자와 달아났거나, 광진테라 아줌마가 친정집으로 도망치거나 하는 큰 이슈들이 생길때마다 심장이 쿵쿵대며, 궁금해하고 더 재밌게 읽었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는, 나도 꼰대라는 생각이다.

진희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려고만 하면 계속 나도 모르게 '그 나이에' 혹은 '그 어린나이에도' 이런 말들을 덧붙이려 했다..

진희가 알면 날 극혐할 수도 ㅠㅠ

나이와 상관없이 진희는 정말 당차고 멋진 아이다. 무서운 것이 있어도 도망치지 않고 마주하는 모습, 당하고만 있지 않는 모습, 또 연민을 느끼는 모습. 너무 사랑스럽고 매력이 넘치는 캐릭터이다.

이 책을 통해 (지금도 만연하지만 그 당시에는 더욱더 당연시 여겨졌던) 그 때 당시의 여성에 대한 차별과 동시에 풍자. 진희의 멋진 생각들을 배우고 공감할 수 있었다. 지금보다 20년도 전이지만 전혀 달라질 바 없는 여러 남성들의 모습은 내 분노를 일으켰고, 거기에 무력하게 넘어지는 여성들의 모습은 현실적이고 슬펐다.

완독 후, 쉽게 정리되지 않았던 내 머릿속을 정리해주었던 평론가 분이 계셨는데, 바로 강지희 문학평론가이다.

-해설 중 (강지희 문학평론가)

아무리 날카롭더라도 대상이 분명한 풍자들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더 빨리 힘을 잃고 낡아버리곤 하지만, [새의 선물]에서 은밀하게 웃음짓는 대상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꿈꾸는 환상의 속성들, 그리고 인생 그 자체다. (중략) 물기 어린 비극 앞에 항상 승리하는 것은 건조한 아이러니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황홀경에 빠진 채 흘리는 눈물은 시간이 흐르면 말라버리지만, 그것을 또렷이 지켜보는 시선은 낡을 수가 없다. [새의 선물]은 세상의 얼굴에서 가면을 볼 줄 아는 눈이 특유의 균형감각으로 포착해낸 이야기, 도무지 낡지 않는 이야기다. (어떻게 이런 평론을 쓰실 수 있는거죠....)

(중략)

불평등한 생에 일일이 불평하지 않는 강건함을 지닌 진희는 남의 처분만 바라는 교태를 몸에 익히는 대신, 어떤 두려운 대상도 무감하게 느껴질 때까지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기를 택함으로써 삶에서 불안과 금기의 개수를 줄여간다.

(중략)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 1992년에 발사되는 '무궁화호'는 화자의 머릿속에서 1696년에 쏘아올려졌던 '아폴로 11호'와 겹쳐진다. 다소 노골적인 남근의 형상을 띠고 있는 이 발사물들은 상승하고 진보하는 세계를 표상하지만, 화자가 느끼는 것은 "90년대지만 지금도 세상은 나의 유년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는 권태와 환멸의 감정이다.

((나: 무궁화호가 저렇게 해석될 수 있구나 싶었던 부분))

(중략)

이상도 이데올로기도 없이 부재하거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드러나는 소설 속 남성들을 통해 (그리고 이는 매우 현실적이다) (중략) 소설은 본의 아니게 거대한 가치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현실을 누설한다. 개체적 인성의 함양이 사회와 유기적인 관련을 맺을 수 없는 시기에, 개인적 성장은 사회와 절연된 채 무의미하게 이어지는 자기 충족적 일상 속에서 자아를 비대하게 불리는 일에 지나지 않게 된다.

*본문 내용의 모든 저작권은 [새의 선물, 은희경 작가, 문학동네]에 있습니다.

제가 인용한 부분들은 책을 이미 읽으신분들이 다시 읽으시면서 환기하고 자신의 생각과 비교하고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책을 꼭 먼저 읽어보세요~

[스크랩]

다만 나를 '그저 그런 계집애'라고 평가한 장군이 엄마의 확신과는 정반대로 어느 면으로 보나 애초부터 내 상대는 될 수 없으며 누구보다 자기 자신이 그것을 잘 알고 있을 장군이의 동글넙적한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을 뿐이다.

((당당한 이지의 왕 진희 너무 멋지다.. ))

"다 팔잔데 어쩌겠어. 여자 팔자가 뒤웅박 팔자....."

나는 할머니의 결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줌마들은 자기의 삶을 너무 빨리 결론짓는다. 자갈투성이 밭에 들어와서도 발길을 돌려 나갈 줄을 모른다. 바로 옆에 기름진 땅이 있을지도 모르는데도 한번 발을 들여놨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뼈빠지게 그 밭만을 개간한다. 61p

((많은 여성들이 떠올랐던 구절.. 시대가 아무리 변했어도, 이 부분은 그대로인 것 같다. 많은 중년 여성들 (우리 엄마 또래들)이 그저 자신의 삶을 한탄한 채, '에휴 그래도 이렇게 살아야지 어쩌겠어' 하며 꿋꿋이 그 힘든 삶을 버텨나가는 것 같다.

어저면 그걸 받아들이는 순간 그 동안의 자신의 행동이 금방이라도 벗어날 수 있었던, 낭비라고 생각될 수도 있는 그 순간들을 인정할수밖에 없어서, 이것이 두려워서 벗어나지 못 하고 부정하는게 아닐까 싶기도 한다.))

스스로도 떳떳지 않다고 생각한 행동을 현장에서 들켰을 때 어른의 권위를 되찾는 마지막 방법으로 택한 뻔뻔스러움이란 걸 알긴 하면서도

((어렸을 때 정말 많이 느꼈던 생각. 그땐 절대 이런 어른이 되지말아야겠다라고 생각했는데 과연 나는 이러지 않은 좋은 어른일까.))

그런데도 아무런 이지적 노력 없이 가만히 있기만 해도 시간이 해결해주는 그따위 신체적 성장을 남의 눈앞에 앞당겨서 보이려 한다거나 다만 금기라는 사실 때문에 본뜰 가치도 없는 어른 흉내에 매료된다거나 하는 것은 역시 봉희 같은 어린애들만의 생각이다. 71p

((너무... 대단해....... 사실 이 구절만큼은 '어떻게 이 나이에'라는 꼰대같은 말을 인용해야만 할 것 같다.

나또한 봉희처럼 그 때 그 당시에는 어른 흉내 내기에 바빴던 어린애였던 것 같은데 저런 생각은 전혀 못했던 것 같다.))

자신이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으며 다만 강요된 죄책감을 치러내고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104p

((자신을 너무 잘 아는 진희. 통찰력있고 이상적이고 인정 또한 빨라서 좋고 재밌다.))

나는 그 노래를 통해서 아빠라는 발음을 처음 해보았다.

((너무 슬펐던 부분..))

회장은 남학생 몫이므로 176p

((개 ㅅ.ㅂ.스러웠던 부분. 왜 회장이 남학생 몫이지? 우리 진희처럼 똑똑한 여성이 있는데?? ^^ 당시 시대상을 잘 보여준다,, ㅎ,ㅎ))

막막하다(한편 이상하게도 이 슬픔에는 단맛이 있어서 굳이 극기훈련을 통해 극복하고 싶지도 않다.) 189p

((뭔가 한편으로 이해되는 감정이었다. 정말 슬프기도하지만 슬픈 나를 즐기기도 한달까.. 나도 어쩔 땐 처음엔 슬퍼서 울다가도 그 다음엔 슬피 우는 내가 슬퍼서 나에 대한 연민을 느끼며 울때도 있다.. 나쁘지 않은 감정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냉소적인 사람은 삶에 성실하다. 삶에 집착하는 사람일수록 언제나 자기 삶에 불평을 품으며 불성실하다. 나는 그것을 광진테라 아저씨 박광진씨를 통해서 알았다.

((박광진 한남새끼.. 개빡친다... 냉소적인 사람은 광진테라 아줌마와 진희겠지. 삶에 불평만 많고 하는 것도 없고 이여자 저여자 오토바이 태우는 것밖에 모르는. 자기 잘난 맛밖에 모르는 남자. 박광진. 광진테라 아줌마가 도망갔다가도 자신에게 비는 박광진을 보고 다시 애가 생기고 돌아오는 모습을 보며 너무 안타까웠다. 답답했지만, 이제는 그것이 아줌마의 잘못이 아니란걸 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는데, 사실 다른 길로 갈 수 있는 기회란게 있었을까 라는 생각.))

나무대문을 닫다보니 삐그덕 소리가 평소보다 몇 배는 크게 났다. 그렇게 크게 울리는 삐그덕 소리야말로 바로 정적이 내는 소리인 셈이었다.

((정적이 내는 소리. 멋진 표현이다.은희경 작가님 최고..))

대부분의 어른들은 모험심이 부족하다. 진정한 자기의 삶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찾아보려 하기보다는 그냥 지금의 삶을 벗어날 수 없는 자기의 삶이라고 믿고 견디는 쪽을 택한다.

((중고등학교때 정말 많이 했던 생각들. 그런데 얼마전까지의 나도 모험을 두려워했던 어른이었던 것 같다. 두고두고 두고 이렇게 되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해야지.))

처녀성을 가져간 사람이 내 주인이라는 생각, 우연에 지나지 않는 그 사건에 운명적 의미를 두는 것, 그 모두가 내게는 어리석게만 생각된다. 이모가 경자 이모에게서 빌려왔던 소설책들의 작가 토마스 하디와 모파상도 그것을 말하려고 [테스]나 [여자의 일생]을 썼을 것이다.

((나도 어리석다고 생각해. 그리고 그런 믿음을 만들어낸 사회가 너무 밉고 화나. 처녀가 대체 뭔데. 오늘 읽은 기사인데, 김*모 어머니에 대한 기사였어. 사람들이 댓글에 어머니는 무슨 죄냐 불쌍하다. 며느리 가장 맘에 든다는 점이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라던데, 이*헌 거쳤으면 말 다했지. 이런 말을 하더라.

김*모 그 사람은 룸살롱도 갔다온 때가 묻을대로 묻은 범죄자인데. 그저 평판 안 좋은 한 남자를 만났다고 순수하지 않은 사람이라니 ㅋㅋㅋㅋ 그저 웃기기만 할 뿐.. 그리고 순수한 여자라는 말 자체도 웃겨. 남자는 경험 많을 수록 좋고, 여자는 없을 수록 좋다는 그 구시대적 발상을 아직도 한다는게 참. ))

특히 여자의 경우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배후에는 ‘팔자소관’이라는 체념관이 강하게 작용한다. 불합리함에도 불구하고 그 체념은 여자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우연히 닥쳐온 불행을 이겨내지 않고 받아들이도록 만듦으로써 더 많은 불행을 번식시키기 때문이다.

((팔자소관: 팔자에 의해 운명적으로 겪는 바))

급하게 다시 매듭을 하나씩하나씩 묶었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붙든 덕에 몸밖으로 나가려던 의식이 가까스로 돌아오고 있었다.

((또다시 멋진 표현....은희경 작가님,....너무 멋져요ㅠㅠ))

나는 애써 냉정한 표정을 짓는다. 기쁜 일이 생겼을 때 마음껏 그 기쁨만 누리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도 이러는데! 하고 공감한 구절 ㅋㅋㅋ.. 괜히 너무 좋은일만 일어나면 불안하다. 아니면 너무 좋은 티를 내면 누군가 그 일을 취소할 것만 같은 느낌. 예를 들어 경품에 당첨대서 너무 좋아하고 있는데 알고보니 연락이 잘못 갔다던가... 썸타는 사람이 영화보자고 했는데 그날 야근을 해서 영화를 못보게 된다던가...그런....))

삶이란 장난기와 악의로 차 있다. 기쁨을 준 다음에는 그것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에 장난기가 발동해서 그 기쁨을 도로 뺏어갈지도 모르고 또 기쁨을 준 만큼의 슬픔을 주려고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구국의 영웅이 되는 것과 살인자가 되는 것의 차이는 그에게 어떤 기회가 주어지는가에 달려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살인자가 되는 것은 그에게 살인을 할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고 배신자가 되는 것 역시 배신의 기회가 왔기 때문이므로. 그 기회를 받아들이느냐 물리치느냐 하는 선택은 스스로가 하는 것이지만 선택의 전 단계에서 어떤 기회를 제공하느냐는 순전히 삶이 하는 일이다. 배신을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지만 배신을 하도록 기회를 마련하는 것은 언제나 삶의 짓인 것이다.

내 고통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의 내면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느 날 나는 지나간 일기장에서 ‘내가 믿을 수 없는 것들’이라는 제목의 긴 목록을 발견했다.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지 않는다 말인가. 이 세상 모든 것은 다면체로서 언제나 흘러가고 또 변하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사람의 삶 속에 불변의 의미가 있다고 믿을 것이며 또 그 믿음을 당연하고도 어이없게 배반당함으로써 스스로 상처를 입을 것인가. 무엇인가를 믿지 않기로 마음먹으며 그 일기를 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삶을 꽤 심각한 것이라고 여겼던 모양이다.

삶도 그런 것이다. 어이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간다. 그러니 뜻을 캐내려고 애쓰지 마라. 삶은 농담인 것이다.

시간의 구분은 사물의 뜻을 공유하고 분류하기 위해 고안한 일종의 장치일 뿐이다. 절대시간이란 것은 없다. 그런데 70년대가 오면 새로운 삶이 시작되기라도 할 듯이 떠들어대는 저 사람들. 70년대라고? 새로운 농담인가?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무궁화호를 보고 있다.

나는 아폴로 11호를 보고 있다.

나는 쥐를 보고 있다

볼드표시와 이탤릭체 표시는 모두 [은희경, 새의 선물, 문학동네] 에서 스크랩해온 것입니다.

모든 저작권은 [은희경, 새의 선물, 문학동네]에 있음을 밝힙니다!

+)

비는 장수는 목을 못 베는 법이다 -> 무슨 말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ㅋㅋ

#새의선물 #은희경 #문학동네 #여성서사책 #책추천 #책후기 #좋은책

댓글